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북리뷰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by Just J.S. 2020. 9. 19.

 

사진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599742

 

 

엄마는 폐암으로 4년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암이라는 병마가 엄마에게 찾아온 이후, 항암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 상실의 두려움이 엄마뿐 아니라 우리 가족 일상의 삶에도 스며들었다. 간절한 희망과 허망한 절망의 반복 속에 죽음의 그늘과 우울의 감정이 함께 공존했던 시간이었다. 참.. 많이 울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암환자의 고통을 가까이 지켜봤기에 방송에서 마흔의 나이인 허지웅씨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안타까웠다. 몇 년 전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으면서, 냉소적인 그의 글이 매력적이면서도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는 혈액암을 이겨내고 [살고 싶다는 농담]으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냉소적이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 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내가는 어떤 것일 테다. 망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

 

「 '함께 버티어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

 

「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삼키고 뱉고 싸고 자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먹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정확히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배변할 수 없다는 걸 한 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날 처음 울었다. 」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에게는 잘자고, 잘 먹고, 잘 싸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몸의 통증을 잊고 싶어 잠을 청하지만 수면제의 도움으로도 잠들기가 여간해서 힘들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살기 위해 억지로 먹는 일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배변이 너무 안되어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할 때 자존심이 무너진다.

요양 보호사 교육을 받으신 엄마 친구분이 장 마사지로 힘들어하는 엄마의 배변을 도와주셨을 때의 그 감사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함과 도움을 받은 안도감, 감사함이 교차하는 그 순간이 참 인간적이라고 느껴졌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려움을 혼자 버티어 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타인과 얽혀 나약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혹은 거절의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더 도움을 요청하고, 기꺼이 도움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버티어 나갈 때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음을.. 마흔이라는 나이를 살아 내면서 나 역시 깨닫게 되었다. 

 

작가는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당신 인생의 일곱 가지 장면'을 뽑아보라고 제안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장면은 나의 죽음이다.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여러 순간들이 책장을 넘기듯이 사르륵~ 스쳐 지나간다. 여러 장면 중에 두 장면이 너무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엄마의 마지막 작별 인사》

엄마가 돌아가시 던 날, 나는 필리핀에서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그저 하염없이 " OO 야~,  OO야~,  OO야~,  OO야~"  내 이름만 반복해서 부르셨다. 

그렇게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최선을 다해 나에게 잘 있으라고, 사랑한다고 작별인사를 해주셨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간절히 원했지만 나에게는 임신이 너무도 어려운 숙제였다. 7년여간 기다렸고 한 번의 유산 후에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필리핀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고, 너무도 오래 기다린 아이였기에 장애인 검사 같은 것은 아예 하지를 않았다. 하지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무척 두려운 마음이 컸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He is Big~Very Big~" 부산스러운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2.2킬로 정도로 작게 태어나는 필리핀 아기들에 비해 3.5킬로의 우량아로 태어난 한국 아기는 간호사들에게 조금은 놀라웠나 보다. "Is he healthy??" 나의 첫 질문에 "Yes~~He is healty~~"라는 의사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여태 내 삶이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딱히 성공적이지 못한 농담 말이다. 백 명의 관객 가운데 두 명밖에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이었다. 그런데 일곱 가지 장면을 꼽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입체적이다. 이야기 속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때 적어도 애정을 가지게 되는 종류의 캐릭터 말이다. 일곱 가지 장면을 꼽는 일은 내 삶을 이야기로, 나를 캐릭터로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다. 

... 그래서 망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을 돌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평안하기를.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책의 제목을 작가는 [살고 싶다는 농담]으로 썼는데 내게는 [살고 싶다는 진담]으로 읽힌다.

누군가는 암을 착한 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병이나 사고에 비해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착한 병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가 투병하시는 4년간 나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게 축복일 수 있는 가'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엄마는 '살고 싶다'고 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간절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