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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북리뷰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저

by Just J.S. 2020. 8. 30.

 

사진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67018988

 

 

마흔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생리통을 겪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와중에 배가 사르르 아파왔고, 쿡쿡 찌르는 익숙치 않은 통증에 겁이나 바로 약을 먹었다. 중학교 1학년 첫 생리 이후 한번도 없었던 생리통이 마흔이 되고서 연이어 두달 이어졌다. 하~ 마흔이 되니 내 몸이 변화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걸까? 이제 서서히 내 몸의 기관들이 노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즈음 나는 평소에도 허리가 자주 아파 모든 행동을 할 때 살살 움직였고, 몸이 아프니 마음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50대 후반 동료는 '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 이제 서서히 하나 둘씩 몸의 아픈 곳이 늘어나게 될꺼야.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아프면 왜 아픈지 잘 살펴봐봐. 요즘 내가 먹은 음식도 생각해보고, 무리해서 한 일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무엇보다 앞으로는 몸의 아픔을 삶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해' 라고 조언해 주었다.

벌써 하나씩 늘어나는 흰머리와 함께 노화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이왕이면 내 몸이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게 되었다.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랄까, 솔직히 책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고, 주말 한나절 가볍게 시간을 보낼 요령으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본인의 '걷는 일상'과 '걸어 온 삶'을 나눈 이야기인데, '같이 걷자'고 '같이 걷다보면 고민도, 버거운 인생도 조금은 가벼워질꺼라고' 묘하게 위로하고 설득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에 나는 '걷는 사람 하정우'의 팬이 되었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내게 주어진 재능에 겸손하고, 이뤄낸 성과에 감사하자. 걸으며, 밥을 먹으며, 기도하며 나는 다짐해본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한때 나는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갈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답이 없을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생각이 똑같은 길을 맴돌 때는 두 다리로 직접 걸어나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힘들 때는 대자로 뻗어버린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려보면 좋겠다.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에겐 아직 최소한의 걸을만한 힘 정도는 남아 있다. 그리고 걷기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엽을 감아주는 효과가 있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더 버티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였을 것이다.

나역시 그랬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하듯 다짐하듯 말해본다.

"힘들다, 걸어야겠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구나.. 하루하루의 루틴, 삶의 기본에 충실하고, '잘걷고, 잘먹고, 잘자고 잘 웃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길의 끝, 소위 말하는 성공이 아닌 길의 여정, 도전하고 노력하는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 길의 여정에서 주변사람과 나누고 동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참.. 멋진 마흔을 살아내고 있구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결심과 점점 힘들어지는 마음에 나도 하정우처럼 열심히 걸어봐야겠다 싶었다. 가끔 30분정도 산책을 했었는데, 우선 1시간으로 시간을 늘려서 좀 더 많이 걷는 연습을 했고, 1시간 걷기에 익숙해질 무렵 주말에는 2시간 가량으로 걷는 시간을 늘려 보았다. 발에 물집도 잡히고, 저녁이면 다리가 많이 뻐근하기도 했지만 햇볕을 받으며 혼자 '걷는 시간'은 답답한 마음에 서서히 숨통을 틔어주었고, 몸과 마음에 조금씩 근육이 자라고 있음을 그리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걷기 연습을 시작한 두달 후, 신기하게도 허리가 조금씩 덜 아프게 되었고, 나는 마음에 조금씩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이 쉽지 않다.. 나도 잘걷고, 잘먹고, 잘자고, 잘 웃는 마흔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프다. 걸어야겠다"
"힘들다. 걸어야겠다"


그냥..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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