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다
문득 옆자리 새로 들어온 필리핀 동료 나이가 궁금해져 묻는다. "하우 올드 아유~~?" "아이엠 트웬티 투, 맘~" 그녀가 미소지으며 대답하는 순간, 싱그로운 봄내음이 난다. 인생의 봄 같은 20대의 건강함과 기분좋은 에너지가 전해진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로부터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마흔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마흔의 삶이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싶어 온라인 독서 모임을 시작했고, 올해 100권의 독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도 들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싶어 [공부머리독서법]을 읽게 되었다. 제목을 무심코 [독서머리 공부법]으로 잘못읽어 나는 '독서머리'를 만들어 주는 '공부법'을 배울려고 했는데, 책은 '공부잘하는 머리로 만들어 주는 독서법' 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초등학생 아들을 둔 마흔의 나에게 독서법과 공부법 두가지를 모두 가르쳐 준 유용한 책이다.
공부머리 독서법
독서교육 전문가이자 작가인 최승필 저자는 한국 사교육의 최전선 대치동에서 12년 독서 논술 교육 현장의 경험과 아이들의 실례를 통해 생생하게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력있게 이야기 한다. 특히, 학교 성적에 관심이 많은 한국 부모들에게 읽기능력과 성적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며 독서를 권장하고, 초등, 중등, 고등학생 별로 나뉜 독서법으로 부모가 참고할 수 있도록 독서 교육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는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실제로 독서할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사교육의 현장에서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공부가 아닌 요점과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공부에 익숙해져 버리게 된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이들의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저하시키게 되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적인 면에서도 비효율적이게 되어 성적이 떨어지게 된다. 진짜 중요한 기초는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언어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작가는 조기 교육을 지양해야 함을 이야기 했고,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방법으로 핀란드 독서기반 교육 시스템을 소개했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이 조기 문자 교육을 금기시하는데, 우리나라 7세 아이들은 한글은 기본이고, 영어 문장을 말하고 덧셈 뺄셈까지 아는 아이가 수두룩 하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불법 행위가 전국적인 규모로 자행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아들아, 함께 책을 읽자
최승필 작가가 이야기 하는 읽는 능력이 성적을 올린다는 주장을 내 아이의 사례로도 뒷받침하고 싶다.
필리핀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따갈로그어, 영어, 한국어 3가지 언어가 섞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 영어를 제일 자연스럽게 구사하더니, 한국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친 이후로는 한글을 모국어로 사고하고 말하는 방식으로 굳혀졌다.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기초가 다져진 한국에서 온 아이들과 필리핀에서 자란 아이들과의 학업 격차는 컸고, 아들은 4학년까지 공부를 못하는 그룹에 속했다. 아이에게 학교 외의 과외나 학원 등은 시킨 적이 없었지만, 만화를 읽어도 좋으니 방과 후 학교 도서관에서 4시까지만 버티다 오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뛰어놀다 놀 사람이 없으면 도서관에 잠시 발도장만 찍고 오는 것 같았다.
아들이 언젠가는 공부를 잘할 꺼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주변에서 예전 우리 때와는 학교 수업 수준이 다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수포자가 되면 계속 수포자가 된다. 지금 시대에는 다들 사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지금 뒤쳐지면 영원히 뒤쳐진다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이겨내고 중심을 잡느라 조금 힘이 들었다.
대신에 나는 아들과 함께 매일 매일 책을 읽었다. 영어책, 한글책 가리지 않고 읽었다. 처음에 아들은 마법 천자문과 같은 학습만화를 닳고 닳도록 읽었으나 나중에는 글밥이 많은 책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다. 아들이 '엄마~ 책을 읽다가 감동적이여서 눈물이 났어요'라고 말해줬을 때, 이제는 혼자 책의 세계를 여행할 준비가 되었구나 싶었다. 올해 5학년 1학기 아들은 혼자 공부해서 국수사과 모두 90점이 넘는 깜짝 놀랄 성적표를 가져왔다. 정말 독서밖에 한 게 없어 독서의 힘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저자는 '숙련된 독서가'로 가는 공부머리 독서법으로 '지식도서의 권장, 슬로우 리딩, 반복 독서, 필사'를 제시한다.
지식도서의 권장
최승필 작가는 본인이 아파서 입원하고 학교 공부를 쉬었던 중학교 3학년부터 2년간의 시간동안, 10번정도 반복해서 읽은 '코스모스'의 독서 경험이 읽기 능력을 키워줬고,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제대로 읽은 지식도서 한 권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강조한다.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읽고 이야기를 나눈 대표적인 지식도서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있다. 솔직히 '총, 균, 쇠'를 읽을 때는 진짜로 머리에 총맞은 것처럼, 내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고 있는 게 맞는가라는 의구심과 오랜 기간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아서 내 머리가 썩었구나라는 후회로 책을 붙들고 씨름을 했다. 약 750 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읽는 과정이 고통이었고, 책의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중간 중간 여러 블로그와 유튜브의 서평을 참고하며 견뎌냈다. 1독을 마친 날, 고통에서 해방된 기쁨과 함께 내가 어떤 산을 하나 넘었구나 하는 묘한 승리감을 맛보게 되었다.
'총, 균, 쇠' 이후, 약 700 페이지에 해당하는 과학 지식도서 '코스모스'를 추천 받았을 때, 이번에는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약간의 희망과 두려움을 안고 책을 펼쳤다. 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책 읽는 진도가 안나갔다. 과학 서적이라 익숙치 않았고 확연히 이해하지 못하는 막막함과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검색하기 시작했고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TV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찾아냈다. 매회 1시간으로 구성된 1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한회씩 보며 책을 읽으니 훨씬 수월하게 책이 읽혔다. 햐~~ 이렇게 멋진 책이 있다니,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Pale Blue Dot'로 표현한 칼 세이건, 확장된 우주의 시각으로 지구와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그의 광활한 시각을 따라 읽는 것 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들었다. 영상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두번째 산을 넘었다.
읽기 능력이 부족하면, 공부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최승필 작가의 말처럼 나는 코스모스를 잘 읽어낼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여 추가로 13시간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식 도서의 장점은.. 나는 읽고 이해하기도 힘든 책을 써낸 작가에 대한 존경이 우러남과 동시에 저절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나를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를 통해 경험한 확장된 시선과 세상을 읽어내는 다른 시선은 나역시 내적으로 더 나아지고 싶다는 성장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슬로우 리딩, 반복 독서, 필사
올해 100권 완독을 목표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중이다. 원래 속독은 어떻게 하는 줄 몰라 정독을 한다. 하지만 내가 너무 목표 권수에 목을 매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고, 음미해 보는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며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가 제안하는 슬로우리딩, 반복 독서와 필사를 '부분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으로 블로그에 서평을 쓰는 방법을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와~ 이 책 참 좋다~'라는 느낌과 얻게된 귀중한 생각들은 머리속에서 너무 쉽게 증발해 버린다. 그래서 서평을 쓰고자 블로그 화면을 연 순간, 자동으로 다시 책을 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목차를 다시 한번 보면서 책의 흐름을 정리해보고, 좋았던 책의 일부 또는 전체를 반복해서 읽게 된다. 인상 깊었던 문구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보고, 그 문구를 옮겨적는 과정에서 컴퓨터 자판으로 필사를 하게 된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서평 블로그 작성을 처음으로 해보면서 기록을 남기는 과정의 기쁨과 글이 남았다는 뿌듯함을 맛보게 되었다. 반면, 별로 쓸 말이 없는 텅 빈 나와 마주하는 안타까움은, 별 수 없이 독서로 채워야 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숙련된 독서가로의 여정
매월 정기적으로 온라인으로 만나는 독서 모임을 통해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책이지만 다른 렌즈로 읽혀진 책에 대한 느낌들과 생각들은 다양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우리는 마흔의 삶을 살아가는 최근 한달의 근황을 나눈다. 회사내 부서를 옮기게 된 이야기, 갇힌 생활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코로나 블루, 새로운 도전의 경험담 등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있는 그 시간들이 내게는 삶에서 위안을 얻는 '힐링 타임'이 된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마흔이 되니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쓰고, 온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 나누는 이 과정이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는 여정임을 믿는다. 그리고, 마흔의 나이에 이런 여정을 걷고 있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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